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문단 편집) == 이 유물의 의미 == 약간 무리한 가정을 한다면,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의 의미는 엄청나다. 북유럽과 중부 유럽,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그리스를 아우르는 지식 네트워크가 기원전 1600년 청동기 시대에 이미 있었고, 단순히 지식뿐만이 아니라 원반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도 그 네트워크를 따라 움직일 수가 있었다는 것. 사실 이렇게 보면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가 중앙 유럽만의 독보적인 특이한 흐름에서 나온건 아니다. 의외로 기원전 1900년 까마득한 고대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광범한 교역로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고, 청동기 시대의 제국들은 서로 호형호제 하며 가급적 충돌을 피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고대 이집트]]와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미노스 문명|미노아]], [[미케네]] 같은 청동기 시대의 제국들은 활발한 국제외교와 국제교역을 통해 하나의 국제질서를 형성했고, 고대 근동 세계를 관통하는 광범한 교역 네트워크를 통해 과학과 기술, 예술과 사상이 도시들을 오가며 발전했다. 이런 강력한 청동기 문명들은 청동에 필요한 [[주석(원소)|주석]]을 구매하기 위해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교역로를 확장했다. 그러나 이런 세계화 시스템은 멀리 확장될 수록 취약해졌고, 새로 편입되는 시장들은 낮은 수준의 문명을 지녀 심각한 위협이 되곤 했으며 결국 [[바다 민족]]의 도래로 크게 쇠퇴한다. 따라서 당시의 전 세계적인 지적, 물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를 만든 중부 유럽의 어느 그룹은 단순히 데이터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개념을 모두 흡수하고 이해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천문을 재측정하여 원반을 개량하였고,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에서 나온 상징까지 덥석 자신의 지식체계에 넣어 반영하였으며. 당대 최고 문명권에서 체계적인 천문관측을 시작했거나,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어도 신화의 눈으로 해석하던 시절 혼자서 현실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였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는 충분히 '''휴대'''할 수 있다는 점이 더더욱 상상의 나래를 자극한다. 원판을 만든 집단이 지식을 독점하려는 권위 있는 사제 집단이라기보다는 __'''지식을 전파하는 지식인 집단'''__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 정보를 독점한 사제 집단이라고 하면 이런 정보를 휴대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큼직한 신전 겸 천문대를 짓고서 자신들만 이해하고 암기하는 측정법으로 천문현상을 관측하고 사회 구성원에게 결과만 하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예를 들어 태양력과 태음력이 차이가 난다는 것 자체는 사회 구성원들도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차이를 누가 언제 윤달이라는 형태로 보충하는지는 종교와 권력이 뒤엉킨 심각한 문제였다. 이 정보를 신관이나 권력자가 독점하고 살짝 비틀어버리면 하늘의 뜻을 알고 받들 수 있는 신성한 존재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실제로 [[탈레스]]가 [[일식]]을 예측해 전쟁을 멈추게 해주는 권위를 내세운 적도 있다. [[스톤헨지]] 같은 거석 건축물을 천문대로 보고 신의 뜻으로 해석하면서 신관의 권위를 높이는 쇼를 하는 큼직한 스테이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장소는 아니지만, [[중앙아메리카]] [[아메리카 원주민|원주민]] 문명 특유의 잔혹한 [[인신공양]]도 이렇게 대중들을 호도할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영화 [[아포칼립토]]는 이 설을 받아들여서, [[마야 문명]]의 사제들이 [[일식]]이 단순한 자연현상임을 알면서도, 이를 두고 '''"드디어 신들께서 만족하셨노라!"'''라면서 노예사냥꾼들에게 제물로 바쳐질 뻔한 주인공 재규어 발 일행을 비밀리에 처리할 것을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식 독점 사제 집단과 달리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를 만든 집단은 이 원판을 가지고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면서 언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지식 전파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몇 년전에 발굴된 [[톨렌제 싸움터]] 유적과 연관지어서 이 유물을 재조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https://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57211628|#]] 이 유적지는 기원전 1300년경에서 기원전 1200년경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의 현장인데, 여기에서 최소 3000명에서 최대 5000명 정도로 추정되는 전사자들이 발굴되었다. 문제는 수비군 측에 속한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소수의 여성과 아이들을 제외하면 유골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며, 주변에서 다리와 도로의 흔적까지 발견되면서, 대규모 군대를 양성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화된 [[도시국가]] 연맹 수준의 정부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기존에는 기원전 시기의 [[중부유럽]]은 아직 간신히 농업과 목축업이 발흥하던 [[선사 시대]]였다는 설이 정설로 간주되었는데, 이 발굴로 인해 [[남유럽]] 이외에도 [[유럽]]에 기원전 시기로 소급되는 오래된 문명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때문에,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가 이런 도시국가들의 경제 협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제안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